임대차 3법이 만든 이중 전셋값, 4년 뒤 무슨 일이 생기나
최종 업데이트 2026-08-20
"집주인이 실거주하겠다고 합니다"
"2년 더 살고 싶다고 했더니, 집주인이 본인이 들어와 살겠다고 합니다." 전세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하소연이다.
임대차 3법이 시행된 뒤, 이런 '실거주 통보'는 세입자들 사이에서 낯설지 않은 일이 됐다. 세입자를 보호하려고 만든 법인데, 왜 이런 상황이 반복될까.
그 구조를 따라가 보면 '법의 의도'와 '시장의 반응' 사이의 간격이 보인다.
세 가지 법, 각각 무슨 역할인가
임대차 3법의 첫 번째 기둥은 계약갱신청구권제(임차인이 최초 계약 만료 시 2년 연장을 한 번 요구할 수 있는 권리로, 사실상 최대 4년 거주를 보장하는 제도)다.
두 번째는 전월세상한제(갱신할 때 임대료 인상을 직전 계약금액의 5% 이내로 제한하는 제도), 세 번째는 전월세신고제(일정 금액 이상의 임대차 계약 체결 시 지자체에 의무적으로 신고하는 제도)다.
세 법을 묶어 요약하면 '4년 거주를 보장하되 임대료 인상을 5% 이내로 묶고, 거래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겠다'는 취지다.
집주인이 먼저 움직였다 — 이중 전셋값의 탄생
법이 시행되자 집주인들은 빠르게 계산기를 두드렸다. 4년간 임대료를 5%밖에 못 올린다면, 새 세입자를 받을 때 '4년치 기대 인상분'을 미리 반영하면 그만이었다.
그 결과 신규 전셋값과 갱신 전셋값 사이에 큰 격차가 생겼다. 마치 정가 항공권과 얼리버드 특가가 나란히 존재하듯, 같은 집인데도 '기존 세입자 가격'과 '신규 세입자 가격'이 따로 움직이는 이중 시장이 형성됐다.
가상의 사례를 들어보자. 전세 보증금(세입자가 집주인에게 맡기는 목돈으로, 계약 종료 시 돌려받는 담보성 금액) 3억 원에 입주한 세입자 A씨(가상 인물)가 2년 뒤 갱신을 청구하면, 집주인은 5% 인상인 3억 1,500만 원까지만 올릴 수 있다.
그런데 같은 시기 바로 옆 동일 평형에 새로 들어온 세입자 B씨(가상 인물)는 이미 오른 시장 가격 4억 원을 내야 했다. A씨는 법 덕분에 8,500만 원을 아꼈지만, B씨는 그 부담을 고스란히 진 셈이다.
4년이 끝나면 — 절벽 효과
계약갱신청구권은 딱 한 번만 쓸 수 있다. 최대 4년(2년+2년)이 지나면 더 이상 집주인의 인상을 막을 방법이 없다.
마치 에스컬레이터로 오르다가 갑자기 수직 계단을 만나는 것처럼, 4년 동안 시장가보다 낮은 보증금으로 살다가 계약 종료 시점에 한꺼번에 '시장 정가'를 맞닥뜨리게 된다.
이사를 가도 사정은 비슷하다. 다음 집도 신규 계약이므로 이미 오른 시장 가격이 그대로 적용된다. 갱신 기간에 아낀 보증금이 새 집의 웃돈을 감당해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집주인 입장에서도 '4년 만기 시점'은 기다리던 기회다. 한꺼번에 시장 가격으로 올리거나, 직접 거주 의사를 밝혀 임차인을 내보내는 선택을 할 수 있다. 서두에서 본 '실거주 통보'가 이 시점에 집중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실수요자가 챙길 점
갱신청구권은 쓸 타이밍을 따져라. 2년 이내에 이사 계획이 있다면 갱신권을 쓰는 게 오히려 손해일 수 있다. 어차피 나가야 한다면, 5% 캡의 이득보다 '퇴거 준비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는 협상'이 더 실익이 클 수 있다.
새로 전세를 구할 때는 신규 계약인지 갱신 계약인지 확인하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시스템에는 갱신 계약과 신규 계약이 구별 표기된다. 인근 갱신 가격과 신규 가격의 격차가 크다면, 그 차이가 정상 범주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4년 만기를 앞두고 있다면 1년 전부터 움직여라. 절벽 효과가 크게 느껴지는 것은 대부분 준비 시간이 부족해서다. 전세자금대출(전세 보증금 마련을 위한 정책·시중 대출 상품) 한도와 이사 가능 지역을 미리 살펴두면 막판 조급함을 줄일 수 있다.
임대차 3법은 단기 세입자에게 강력한 방패지만, 4년이라는 유효 기간이 있다. 보호막의 크기와 만료 시점을 정확히 알고 활용하는 것, 그것이 이 법을 현명하게 사용하는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