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입자를 지키려 만든 법이 전세를 뒤흔든 이유

최종 업데이트 2026-08-17

"2년 더 살 수 있다"는데 왜 이사가 더 힘들어졌나

계약 만기가 다가오면 세입자는 늘 조마조마하다. 집주인이 갑자기 큰 폭 인상을 요구하거나 아예 퇴거를 통보할까 봐 불안하다. 2020년 시행된 임대차 3법은 바로 이 불안을 덜어주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다.

계약갱신청구권제(세입자가 2년 계약 만료 후 한 차례 더 연장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생기면서, 이론상 한 집에 4년까지 살 수 있게 됐다. 전월세상한제(갱신 시 임대료 인상 폭을 직전 계약의 5% 이내로 묶는 제도)도 함께 도입돼 집주인이 마음대로 올리는 것을 막았다. 언뜻 보면 세입자에게 반가운 소식이다.

그런데 법 시행 이후 오히려 "전세 구하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보호받는다는 느낌 대신 이사철마다 집을 못 구하는 경험이 늘었다. 무엇이 의도와 어긋난 걸까?

법이 기존 세입자를 지키자, 신규 세입자가 피해를 봤다

임대차 3법의 핵심은 "갱신 계약"과 "신규 계약"의 규칙이 다르다는 점이다. 갱신 시에는 5% 상한이 적용되지만, 새로운 임차인과 맺는 첫 계약에는 아무런 상한이 없다.

집주인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기존 세입자의 갱신을 허용하면 앞으로 4년간 5% 이내만 받아야 한다. 지금 내보내면 새 계약에서 시세대로 부를 수 있다.

결과는 예상 가능했다. 신규 계약 시점에 집주인들이 "4년치 기회비용"을 미리 올려 부르기 시작했다. 마치 편의점이 1+1 행사를 없애면서 낱개 가격을 올리는 것처럼, 한쪽의 혜택이 다른 쪽의 비용으로 전가됐다.

가상의 사례를 들어 보자. 서울 어느 지역에 사는 직장인 C씨(가상 인물)는 살던 집 계약이 끝나 새 전셋집을 알아봤는데, 기존 보증금 3억 원짜리와 비슷한 평형이 신규 물건에서는 4억 원 안팎을 요구했다. 법 시행 전보다 한참 높은 수준이라는 걸 인근 공인중개사를 통해 확인했다.

또 다른 문제는 매물 감소다. "4년 묶이는 것이 싫다"는 집주인 일부가 전세 물건을 거두고 단기 월세로 전환했는데, 마치 동네 주차장이 장기 정기권을 없애고 시간제로만 바꾸는 것과 비슷하다. 공급이 줄자 남은 매물에 수요가 몰렸다.

전세가 줄고 월세가 늘다: 구조적 전환

임대차 3법 이후 두드러진 변화 중 하나는 전세에서 월세로의 이동이다. 집주인 입장에서는 전세보증금을 운용해 수익을 내는 구조가 예전보다 매력이 줄었고, 갱신 청구권으로 4년 묶일 리스크도 생겼다.

세입자 입장에서는 선택지가 좁아졌다. 목돈을 보증금으로 넣어 월 비용을 줄이고 싶어도 전세 물건이 귀해졌다. 월세 비중이 높아질수록 매달 나가는 현금이 늘어 저축 여력이 줄어드는 구조다.

특히 보증금이 없거나 작은 순수 월세(무보증월세·반전세)가 늘어나는 추세는 목돈 마련이 절실한 청년이나 저소득층에게 더 불리하게 작용한다.

실수요자가 챙길 점

첫째, 갱신청구권은 한 번뿐이다. 같은 집에서 이미 갱신청구권을 행사했다면, 다음 계약 만료 시에는 권리가 소진된 상태라 협상력이 크게 떨어진다. 이사 타이밍을 정할 때 이 점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둘째, 전월세신고제(보증금 6,000만 원 초과 또는 월세 30만 원 초과 계약은 계약일로부터 30일 이내 관할 주민센터에 신고해야 하는 제도)를 반드시 챙겨야 한다. 신고 의무를 어기면 과태료가 부과된다.

셋째, 신규 계약 전에 주변 실거래가를 꼭 확인하라. 갱신 계약과 신규 계약의 가격 차이가 상당할 수 있으므로, 이사를 결정하기 전에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 시스템에서 최근 거래 내역을 살피는 것이 좋다.

넷째, 전세 보증금 보호 장치를 점검하라. 집주인의 대출 규모(근저당, 집을 담보로 설정된 채권 최고액)가 크면 내 보증금이 위태로울 수 있다. 전세보증보험(보증금 반환을 보증해 주는 보험 상품)에 가입할 수 있는지 계약 전에 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임대차 3법은 약자를 보호하려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어떤 법도 시장 전체를 한 방향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법의 구조를 이해하고, 자신이 기존 세입자인지 신규 세입자인지에 따라 전략을 달리하는 것이 지금 전월세 시장에서 내 권리를 지키는 실질적인 방법이다.